real story [23. 사랑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다!]

 

2007년이었다. 아버지께서 소화가 안 되는 증세와 복통을 호소하셨다.

병원 검진 결과 위궤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드시기 시작했지만 증세는 점점 악화되는 것같았다. 별일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큰 병원에 갔다.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말로만 듣던 암이었다. 그것도 위암 말기,이미 폐까지 전이되었다고 했다. 위를 완전히 떼어 내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으셔도 살 가능성은 30%라고 했다.세부적인 검사가 진행되면서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하나 더 밝혀졌다. 심장 한쪽 기능이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평소 예민한 편이 아니셨고, 등산이나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기때문에 특별한 불편을 못 느끼셨던 것 같았다. 큰 수술은 심장에 무리가 많이 가다 보니, 심장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원에서는 ‘위험성이 존재하더라도 수술을 해야만 조금이라도 더 사실 수 있다.’며 수술을 권유했다.

 

총회장 목사님을 뵐 일이 있을 때, 고민하고 있던 아버지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기도하면서 건강관리를 하며 낫게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수술을 안 하면 6개월도 살기 힘들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던 부모님을 설득해서 수술을 말리기는 힘들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총회장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렸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위를 떼어 내고 식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대수술이었는데,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이틀 뒤 새벽 2시경, 한국에 있던 아내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심장이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맥박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임종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심장을 인위적으로 뛰게 만드는 ‘에피네프린’이라는 약물을 주사하는 방법을써 보자고 했다. 억지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이라 출혈이 심하게 발생할 수 있지만, 그냥 두면 어차피 돌아가시니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호자의 결정이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했다.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고 전화 통화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답답함, 이 급박한 상황을 먼 타지에서 맞아야 하는 초조함,아버지 임종을 지켜 드리지 못할 것 같은 슬픔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오직 하나님만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총회장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총회장 목사님은 기도를 해 보시더니 말씀하셨다.“하나님께서 아버지 수한이 다 됐다고 하신다.”“지금 돌아가시면 한이 너무 크게 남을 것 같습니다.제발 아버지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총회장 목사님은 내 간절함을 듣고, 다시 기도를 하셨다.“하나님이 주사를 맞지 말라고 하신다.” 하시며 계속 기도를 하셨다.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주사를 맞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최후의 수단이라도 써야 한다. 지금 당장 맞아야 한다. 이렇게하면 100% 돌아가신다.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는 가족들과 의사를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그렇지만 젊은 시절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죽음을 선택하려고 했던 나에게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은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매번 어려운 순간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케 해 주셨기에 그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끝내 가족과 의사를 설득시켰다.새벽 4시에 한국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며놀라워했다.

 

이후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받으셨고,

전이되었던 암세포까지완전히 사라졌다. 위가 없어도 하루 세끼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할 수 있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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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21. 절망의 순간 하나님을 잡다]

 

 

1999년 가을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남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뇌종양 진단을 내렸다. 남동생은 늘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숨골 쪽에 종양이 점점 커지면서 시력도 혼미해졌고 걸을 때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다. 온몸에 마비가 오는 ‘소뇌종양’이라고 했다. 담당 의사는 종양이 악성와 양성에 교묘하게 걸쳐 있어서 6개월에서 수년밖에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의 나이 23세였다. 어머니의 교통사고, 오빠의 대형 산재사고에 이은 동생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2시간이 넘는 뇌수술을 5번이나 받은 동생은 뇌 기능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수분조절이 안 되어 뇌에 작은 관을 심어 뇌수액을 빼내기도 했다. 혼수상태에 빠지는가 하면 뇌수막염에 걸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장시간 수술이 진행될 때마다 가족은 수술실 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한 친구가 새벽 2시경에 택시를 타고 나를 찾아왔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왔다고 했다. 나와 가족을 위로하고 동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당시엔 그 친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지나치게 하는 편이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나도 그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친구의 정성에 감동이 되어, 교회에 와서 성경말씀을 배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료를 하게 되었다. 수료를 한 날, 동생이 1년3개월 만에 퇴원을 했다. 한방병원에 다시 입원한 동생은 병원에서 말씀을 배웠다.

 

그러다 2001년 2월 25일 전국 전체예배가 있어서 수련원에 가게 되었다.

그날이 우리 가족에게 역사적인 날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해외 선교로 인해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총회장 목사님을 이날 처음으로 뵙게 되었다. 나와 동생은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수련원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갑자기 가던 길을 돌이켜 우리 곁으로 다가오셨다. 가까이 오신 총회장 목사님은 언제 병이 생겼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물어보셨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균형조절의 장애가 왔고, 재발되면 몇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총회장 목사님은 동생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 주셨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총회장 목사님의 목소리에는 한 생명을 향한 깊은 사랑,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다.기도를 받은 뒤, 동생의 회복은 놀랄 정도로 빨랐다. 담당의사는 수술 부위가 재발 위험 없이 깨끗해진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한 달 뒤에, 어머니는 그해 겨울에, 다음 해에는 할머니가,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아버지가 수료를 했다.시력과 언어장애, 균형기능 등 장애 4급의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던 동생이 9년 만에 대학 졸업을 하고 인터넷 방송국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교회에서 온 가족이 함께되었다.우리 가정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과 그 깊은 사랑을 몸소 보여 주시는 총회장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간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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